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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워킹맘과 전업주부의 대결

by 참견하는 INTP 2025.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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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카페에서 흥행을 보장하는 주제가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워킹맘과 전업주부 중 서로 내가 더 힘들다며 토로하는 글이다. 이런 글은 필자 조차도 그냥 넘어갈 수 없고 무슨 내용인지 기어코 클릭해서 읽어보게 만드는 글이며, 댓글은 항상 만선이다. 댓글에 대댓글에 서로 물고 뜯고 난리도 아니다. 어젯밤에 미리 냉침해 놓은 녹차를 마시면서 각자의 주장을 흘겨보고 있노라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그런데 다른 내용은 다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평생 제대로 된 직장 한 번 안다녀본 사람이(최소 9 to 6 5년 이상) 직장인의 고된 삶을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면 조금은 화가 난다. 아마 군필자들 입장에서 미필자들이 군대를 "2년 동안 무료로 캠프다녀오는 것"이라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군대가 1년 반인지 2년 인지도 모르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나이 많은 여성분들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여자는 직장을 다닌다고 해도 남자직원들과 달리 사무실에서 커피 타주고, 다른 직원들 책상 닦아주고, 쓰레기통 비우고,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 받는 일만 하다가 오는 줄 알아서 그런거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신혼 때 필자의 시어머니는 2주 가량 해외 출장을 앞둔 필자에게 "해외여행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하셔서 필자를 상당히 당황시키셨는데 분명 악의는 없으셨더라. 떠나는 나에게 남편 밥 걱정까진 안하셔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 것 처럼 제대로된 직장 생활을 한다는건 한 사람의 육신과 정신을 모두 흡혈 당하는 일, 그것도 하루 10시간 정도를 매일 헌신 당하는 일이라는걸 그 나이대 분들은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이려니 싶다. (이제는 맘카페에도 댓글다는 이의 성별과 나이가 나와야 할성싶다.)

근데, 여기서 아기가 있다? 그 아기가 만 3세 미만이다?

직장과 육아를 병행한다는 것 만으로도 워킹맘은 무한히 칭찬 받아야 옳다. 오죽하면 워킹맘은 삼복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까지 있다. 시터복, 남편복, 아이복. 아이를 믿고 언제든 맡길 수 있는 시터(혹은 가까이 살아서 아이를 봐주실 부모님), 육아와 집안일을 내 일 처럼 발벗고 나서서 열심히 해줄 남편, 기질적으로 순해서 어린이집을 잘 다니며, 잘먹고, 잘싸고, 잘자는 아기. 이렇게 세가지 요소가 아름답게 융화되어 삼위일체를 온전히 이룰 때, 비로소 여성이 직장을 단절하지 않고 워킹맘으로서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잘 유지할 수 있는 법이다. 

물론 각자의 가치에 따라, 직장과 육아의 비중을 조절해서 삶을 유지할 것이다.

엄마의 역할보다 직장의 한 구성원으로서 성공하는게 우선이라면 당연히 직장에 큰 비중을 두고 살 것이다. 반면, 3세 이하 아동의 정서적 안정과 애착의 중요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육아휴직을 장기로 이용한다던지, 퇴사를 선택할 수도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거나 운이 좋아 육아휴직에 관대하고 육아시간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퇴사를 하지 않고도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낼 수 있다. 물론 이런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해도, 직장에서 이전보다 내 커리어에 대해 하찮은 평가를 받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직장은 당신이 자녀가 있든, 홀어머니를 부양하든, 이혼녀이든 생각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단지 직장에서 오랜 시간을 머무르고, 직장내 인맥을 두텁고 넓게 관리하며, 상관에게 친절하며 호의적인 사람이기를 바라는 곳이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자. 당신이 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여 직장에 헌신! 하는지"를 평가한다. 물론 월급쟁이에 한하여 하는 말이니, 본인이 총책임자급인 경우는 예외다. 

워킹맘의 대다수는 이런 평가절하의 상황을 감수하면서도 직장생활을 이어간다.

다른 베네핏이 있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는 다양한 이유를 열심히 설파하겠지만 결국 그것은 돈과 인간관계로 귀결될 것이다. 이 베네핏은 전업주부 대비해 엄청난 메리트이며, 경제적으로 곤란한 전업주부들이 워킹맘을 시샘하고 부러워해서 결국 이 논쟁이 벌어지는 본질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전업주부들이 워킹맘보다 자신이 더 힘들다 토로하는 근거로, 그들은 "워킹맘은 돈을 벌지 않냐, 직장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사람들하고 수다라도 떨 수 있지 않냐"고 얘기하는데 이것은 100%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업주부가 상대적으로 더 힘들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아니라, 워킹맘들이 직장생활을 함으로써 얻게되는 이득과 손해 중 이득에 관한 내용이다. 그것이 전업주부가 워킹맘보다 더 힘들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전업주부들은 자신들은 주말이고 방학이고 쉬는 날이 없기 때문에 더 힘들다고 한다.

이 주장 또한 문제가 있다. 필자 주변의 워킹맘들도 주말이고 방학이고 쉬는 날 없이 바쁘다. 잊지 마라. 워킹맘의 어원은 워킹+맘 이다. 일하는 주부이기 때문에 주부와 동일하게 주말이고 방학이고 쉬는 날이 있을 수 없다. 오히려 대부분의 전업주부들은 아이가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를 간 사이에 잠깐이나마 쉴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가? 주 7일 중 5일은 아이가 기관에 가니, 그 시간을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면서 낭비하기 보다 생산적으로 보낼 방안을 찾는것이 현명할 것이다.

 

필자가 전업주부 생활을 몇 년 해 보니, 확실하게 알겠다.

그냥 무조건 워킹맘이 더 힘들다. 명백한 사실을 아니라고 우기지 말자. 워킹맘 한다고 집안일과 시댁응접, 양육의 의무가 대폭 사라지지 않고, 괴로운 직장은 아이 낳기 이전과 동일한 심신의 투입을 요구한다. 아니 눈치가 보여 그러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 평가는 이전만 못하며,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도 곤란하다. 남편에게 생활비 달라는 것도 눈치 보인다고? 시댁 어른들이 집에서 논다고 자꾸 눈치 준다고? 그 눈치 보는거 직장 생활하면 매일 매일 수차례씩 겪을 일이고, 내 사회적 평판에 금가는 일이라 더 치명적이다. 

전업주부가 하는 일 없이 편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전업주부가 어느정도의 완성도를 목표로 살림을 가꾸느냐에 따라 할 일의 가짓수는 천차 만별이지만, 애초에 그 목표치를 본인이 정할 수 있으며, 스스로 관리-감독-평가가 이루어 진다는 점이 일의 난이도를 확 낮추는 것이다. 직장은 마른오징어 마저도 물기를 쥐어 짜낸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사람을 못살게 구는 곳이다. 연봉 4,000만원 이상 정규직 중 받는 돈 이하로 노동하는 직장은 없다. (있으면 좀 알려달라. 당장 이직한다.) 전업주부이면서 이 말이 와닿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이력서를 써내고 연 4,000만원 이상 주는 곳에서 정규직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해 보자. 3달만 다녀도 무슨 말인지 확 와닿을 것이다.

Tip. 너무 비현실적인 얘긴가? 혹시 정말로 집안일이 너무 많고 청소해야 할 곳, 손이 갈 곳이 많다면, 미니멀리즘을 실천해 보자. 집안일이 1/3로 확 줄어드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필자는 평생 전업주부가 꿈이다.

내가 전업주부임에 자부심을 가지고, 내 손으로 아이를 키우며, 뜻하는 일을 겸할 수 있다면 세상 만족스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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