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로 사노라면 행복하지만 생각보다 여유있지는 않다. 직장인이었을 때는 '전업이면 시간 남아 도는거 아니야?' 라든가 '할 일 없을 땐 그림이라든가 공부 같은거 하면 될것 같은데' 하고 생각했었다. 마치 시간 부자가 될 것 같은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막상 전업주부가 되어보니, 시간이 많지만서도 결코 넉넉하지는 않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있다. 그건 내가 비교적 게으르지 않은 편이고, 아주 "적당히" 무언가를 추구하는 스타일이고(결코 과하지는 않음), 아이와 집안 일을 전적으로 도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은 가끔 출근길에 쓰레기 봉투를 버려주는 일만 한다.)'과연 우리 와이프는 내가 직장에서 뼈빠지게 일하고 쪼임 당하는 동안 집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너무 궁금해하는 남편들을 위해 간단히 전업 육아맘인 "나"의 하루 일과를 적어보려 한다. 어디까지나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아 참, 필자는 2주에 한 번 청소 이모님이 오셔서 화장실이나 싱크대, 평소 내 손이 닿을리 없는 구역을 청소해 주신다. 그리고 돌봄 선생님이 주 2회 2시간씩 아이와 놀이시간을 보내주시는 일부 아웃소싱을 하고 있음을 참고하자.
기상시간은 아이가 정한다. 대게 8시 전 후.
아이가 일어나면 엄마를 찾는다. "엄마 일어나서 나랑 놀자" 혹은 "쉬마려워" 둘 중 하나를 한다. 필자는 오전에 아이를 위해 몇가지 챙겨줘야 할 일이 있다. 폴락스산 변비약 먹이기, 아침밥 차려 주기, 유산균 먹이기, 옷갈아 입히기, 수저랑 물통 챙겨서 아이에게 가방에 넣으라고 시키기, 옷 갈아 입히고 등원 하기 등이다. 잘 안먹는 아이에게 이 모든 과정을 화 내지 않고 클리어 하려면 시간을 넉넉하게 가져야 한다. 반드시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내가 화를 내지 않고 미션을 다 완수할 수 있다. 어린이집에선 아침으로 매일 죽이 나오지만 소량임에도 고칼로리 영양식을 먹어야 하는 소식좌 아이의 엄마라면 고기반찬과 계란이 꼭 포함된 아침을 아니 차려줄 수가 없다. 참말 잘 먹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그 것 하나만으로도 진심 복 받은 거다.
등원 후 가장 먼저 할 일은 집안 일.
8시에 일어났지만 등원하고 집에오면 10시다. 아이 등원 준비에만 1시간 30분 이상이 소요된다. 집에 오면 설거지(식기세척기 사용), 간단한 집 정리(집이 엉망 그 자체이다. 물감은 왜그리도 많이 바닥에 뭍혀 놓는건지.) 후 본격적인 샤워 시작. 왜그런지 모르겠는데 씻는데 40분 정도 걸린다. 그 후 주 2~3회 운동을 하는데, 11시에 필라테스 수업이 있어 서둘러 출발해야 늦지 않는다.
운동 다녀오면 열 한시 반. 다시 샤워 후 점심시간이다.
샤워가 또 30분을 잡아먹기 때문에 12시 정도에 점심을 준비해서 다 먹고나면 1시 정도 된다. 이건 직접 요리를 해서 먹었을 경우고, 귀찮거나 특별히 맛있는게 먹고 싶은 날이면 운동 다녀오는 길에 햄버거나 토스트 세트를 사와서 먹기도 한다. 어쨌거나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가 이미 시작되어 있다.
이때부터 마음이 조금 급해진다. 하원 시간이 얼마 안남았잖아.
근데 블로그 업로드도 해야하고, 내가 요즘 매진하고 있는 게임도 해야 하는데. 아니, 독서는 또 언제 해야 하지? 시간은 왜 벌써 두 시야? 마음이 초조하다. 아 참, 이틀에 한 번 돌리는 세탁기에서 나오는 빨래도 이때 개어서 옷장에 잘 넣어 둬야 한다. 그 외 남편이 부탁한 주말이나 휴가 여행 계획 세우기, 예약, 인터넷 쇼핑, 장보기 등등도 시간안에 해야 한다. 미친다. 와중에 미니멀 라이프를 한다고 설쳐댔던 한 달 간은 이 시간중에 집정리를 진행했다. 뭘 하든 나의 잉여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이나 자유가 아닌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이 때 뿐이다. 마지노선은 3시 45분이다. 아이와 하원을 약속한 시간이 4시이기 때문이다.
아이 하원 완료. 다시 일상의 시작이다.
아이랑 놀아주기, 저녁 먹이기, 그림 그리기, 레고 놀이, 옆 동네 놀이터 가기, 아이 수업 들으러 가기 등 등이 이뤄진다. 그 와중에 반찬투정하는 남편 저녁준비도 틈틈이 해놔야 한다. 근데 아이가 아직 매운 것을 먹지 못해서, 남편 메뉴 따로, 아이 메뉴 따로 챙기는건 정말 못해 먹겠다. 능력 밖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지치거나 몸이 좋지 않을 때, 혹은 아이가 갑자기 외식 타령을 할 때는 외식 찬스를 쓰기도 한다. 돌봄 선생님이 오시는 날엔 그나마 2시간의 여유가 생겨 이것 저것 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한창 흥이 오를 때 쯤에 선생님이 가셔야 할 시간이 온다. 2시간은 생각보다 짧다고 느낀다.
남편이 퇴근했다고 안심하지 말라. 아군이 아닌 우방국이다.
남편이 퇴근해서 육아와 집안일을 적극적으로 돕는 럭키한 주부도 있겠지만 필자의 남편은 범부라 그렇지 못하다. 자기 취미 생활이 중요하다면서 꼬박 주 2회씩 저녁에 운동을 2시간씩 다녀오는 사람이다. 반대 입장이라면 나는 평일 하루동안 아이랑 보내는 시간이 적은게 못내 아쉬워서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은데, 남자라 그런건지 사람이 문제인건지 저렇게 꼬박 다니는게 참 신기하다. 내 편이라고 믿었다가는 배신감 느끼고, 마냥 남의 편이라기엔 그래도 내새끼 예뻐해주고 중요하게 생각하니 우방국정도로 생각하련다. 생활비도 주고 재산세도 내주니 쓴소리는 하려다 말고 그냥 참아 본다. 아무튼 아이와 익사이팅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그나마 자기전 양치질은 남편이 담당이되어 잘 해준다.
아이가 자면, 드디어 퇴근이다.
미뤄뒀던 T1 경기도 시청하고, 경기가 없는 날엔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를 보는 시간이다. 뭔가 해야 할 "의무"가 없는 유일한 자유 시간이다. 하루를 마감하는게 아쉬워 거의 12시를 채우고 잠이 든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매번 생각한다. 남편은 아마 똑같은 상황에서 나 만큼은 못 할 것이라고. 여기서 만약에 내가 더 생산적인 뭔가를 하거나 개인의 성취를 바란다면, 안락하고 깨끗한 집안과 아이 케어는 어느정도 희생해야 할 것이라고.
아무렴, 그래도 회사생활보다야 백 배 낫지,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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